진도

여수시시청 전경
캠퍼스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도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주말이면 기숙사는 썰물처럼 비었고, 나 역시 낯선 도시 한가운데서 깊은 고립감을 마주했다. 신입생 시절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는 나에게 마치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다.그러던 어느 날 학교 포털에서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 붐업 페스티벌’에 참여할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됐다.호기심에 신청해 이순신광장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 수많은 관객의 환호 속에서 박람회 깃발을 흔들며 무대를 행진했지만, 행사가 끝난 뒤에는 오히려 묘한 괴리감이 남았다.
여수의 섬과 미래를 알리는 깃발을 들고 있었지만, 정작 외지 청년인 나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작은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4년 내내 여수를 남의 동네로 바라보다 떠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곳에서 단 한 번뿐인 대학생 시절을 제대로 살아볼 것인가.’
나는 낯선 도시의 문을 먼저 두드리기로 했다.혼자서는 막막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결핍과 외로움을 느끼던 학우들과 뜻을 모았다. 수산해양 분야 전공을 살려 청년 봉사단체를 만들고, 만성리 검은모래해변을 우리의 ‘반려해변’으로 입양해 정기적인 해양환경 정화활동을 시작했다.처음에는 캠퍼스 인근의 작은 해변 하나를 정화하는 일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활동이 이어지면서 우리의 발걸음은 여수 전역의 해안과 섬으로 넓어졌다.
여수반도의 굽이진 해안도로 끝자락부터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닿는 외딴 섬마을까지 찾아갔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해안가는 물론 섬 곳곳에 밀려든 폐플라스틱과 낡은 어구를 마대에 담았다.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수 사람들을 만났고, 지역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다를 정화하기 위해 시작한 활동은 어느새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고 지역의 일원이 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여수에서 쌓아온 봉사활동 시간은 어느덧 1,400시간을 넘어섰다.함께 활동했던 학우 가운데 여수에 정착한 이들도 생겼고, 여수를 떠난 뒤에도 여수를 마음의 고향으로 간직하는 이들도 늘었다. 우리가 쓰레기를 줍던 수많은 시간은 단순한 환경정화 활동이 아니었다. 여수라는 도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이곳에 뿌리를 내리는 정착의 시간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은 지역사회의 성과로도 이어졌다.여수의 해양환경과 섬의 가치를 청년의 시선으로 풀어낸 프로젝트를 기획해 전남형 청년공동체 사업에 도전했다. 이후 여수시 대표로 성과공유회에 참가했고,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최우수상이라는 결실을 거뒀다.시상대에서 우리 단체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전율이 일었다.
타지에서 내려와 여수에서 방황하던 청년들이 이제는 여수의 해안과 섬을 직접 누비며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주체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지역사회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면서 2022년 1학년 때 붐업 페스티벌 무대에서 들었던 깃발의 의미도 달라졌다.그리고 학업을 마칠 무렵,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앞두고 우리가 직접 발로 뛰며 사랑하게 된 여수의 섬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거문도와 금오도, 사도 등 여수의 섬들을 찾아다니며 마주했던 풍경을 따뜻한 일러스트로 담았다. 이를 아트 엽서로 제작해 시민과 여수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나누는 공익 프로젝트도 시작했다.쓰레기를 줍던 청년들이 이제는 여수의 고유한 매력을 알리는 로컬 크리에이터로 한 걸음 더 성장한 순간이었다.
지역에 대한 애정은 제도적 참여로도 이어졌다.‘여수시 청년정책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며 대학생과 청년 창업가, 이주청년, 20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타지 청년들이 여수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주거와 문화, 일자리 정책을 고민하고 이를 시에 제안했다.정책이 제안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논의와 정책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여수가 청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돌이켜보면 1학년 시절 페스티벌 무대에서 영문도 모른 채 깃발을 흔들었던 청년은 이제 여수의 섬을 알리고 여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청년 기수’가 됐다.
그리고 여수는 더 이상 잠시 머무는 도시가 아니다.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됐고, 가장 찬란한 열정과 보람이 살아 숨 쉬는 곳이 됐다. 이제 나에게 여수는 ‘영원한 나의 고향’이다.앞으로도 여수에서 크고 작은 파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파도를 담담히 넘어서며, 여수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묵묵히 해나가고 싶다.2022년 낯선 도시의 언덕에서 시작된 대학 생활은 그렇게 나를 여수에 뿌리내리게 했다.잠시 머물다 떠날 곳이라 생각했던 여수는, 어느새 내가 살아갈 고향이 됐다.
김남귀 기자 1965pp@naver.com






편집 : 2026.11.04 (수) 2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