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황일우 나주교통 버스운전기사
“나주로 좀 갑시다.”
어르신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차에 올랐습니다. 맨발에 가까운 발에는 슬리퍼만 걸쳐져 있었습니다.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집을 나온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어르신의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무슨 사연이 있으신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주터미널에 도착한 뒤 조심스럽게 사정을 여쭈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어르신은 담배부터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20년 만에 피워본다는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들었습니다. 옅은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사이, 아흔한 살 어르신의 지난 시간이 조용히 흘러나왔습니다.
어르신은 아내와 함께 아들 집에 놀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말다툼이 있었고, 순간 서운한 마음에 담배나 한 대 피우겠다며 집을 나섰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담배 한 갑을 사 들고 돌아서는데, 아들이 사는 평동의 낯선 동네가 갑자기 거대한 미로처럼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왔는지, 어느 길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비슷비슷한 골목길을 슬리퍼를 끌며 한참 헤맸다고 합니다. 아흔한 살. 평생 자신의 두 발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 어느 순간 아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조차 찾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내가 아흔을 먹고 내 발로 찾아온 아들 집 하나도 못 찾아가는구나.’ 그 생각이 들었을 때, 어르신의 마음에는 길을 잃은 것보다 더 큰 두려움과 서러움이 밀려왔을지도 모릅니다.
평생 지켜온 자존심이 낯선 골목길에서 조금씩 무너지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어르신이 선택한 곳은 아들 집도, 낯선 도시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고향, 나주 문평이었습니다. 길을 잃을 걱정이 없고, 골목 하나하나가 기억 속에 남아 있으며, 자신의 삶이 시작된 곳.아흔한 살의 어르신에게 문평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마음이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르신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문평에서 함께 자란 동네 친구가 마흔일곱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에 남은 친구는 단 두 명뿐이라고 했습니다.한 명은 혼자 살고 있고, 부부가 함께 살아 있는 집은 자신의 집뿐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어르신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마음이 서운할 때가 있고, 길을 잃고 당황할 때도 있으며, 결국에는 내가 가장 편안했던 곳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늙어가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젊은 사람도 서운하면 집을 나서고, 갈 곳이 없어지면 누군가를 찾습니다. 아흔한 살의 어르신도 똑같았습니다.잠시 화가 났고, 잠시 서운했고, 길을 잃었고, 결국 가장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만 젊은 날에는 몇 번이고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길이,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멀고 낯설게 느껴졌을 뿐입니다.

고향으로 향하는 아흔살의 어르신
저는 어르신께 문평으로 가는 501번 버스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버스에 오르시기 전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어르신, 집에 계신 사모님이 얼마나 걱정되셨으면 전화가 계속 왔겠습니까. 꼭 전화하세요. 지금 나주터미널에 있다고, 이제 마음 편한 고향 집으로 간다고 말씀드리세요.” 어르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버스에 오르는 어르신의 가녀린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달리지만,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삶은 하루도 같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병원에 가고, 누군가는 시장에 가고, 누군가는 가족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때로는 오늘처럼 길을 잃은 한 사람이 버스에 올라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내려놓기도 합니다. 운전대를 잡고 매일 수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다 보면 초고령사회가 되어가는 우리의 현실을 피부로 느낄 때가 많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의학은 발전했고, 교통과 통신기술도 눈부시게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편리해져도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 느끼는 막막함. 가족에게 서운한 마음.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자존심.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내가 가장 편안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그것은 스무 살이든 아흔한 살이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디 계세요?” “괜찮으세요?” “걱정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 “어서 오세요.”
그 말 한마디가 아흔의 삶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오늘 하루, 어르신께서 문평 집에 무사히 도착하셨기를 바랍니다. 놀란 마음도 잘 추스르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르신을 걱정하며 수없이 전화를 걸었을 사모님과 다시 마주 앉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드셨기를 바랍니다. 버스기사로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어떤 만남은 차에서 내린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오늘 만난 아흔한 살의 어르신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문평으로 향하는 501번 버스를 바라보는 순간, 문득 20년 전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이 떠올랐습니다.아버지도 언젠가 이런 마음으로 길을 바라보셨을까. 자식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면서도 결국 자식이 있는 곳을 바라보셨을까. 세월이 흘러도 부모의 뒷모습은 왜 이렇게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오래전 떠나신 분인데도, 오늘 만난 아흔한 살 어르신의 가녀린 뒷모습 하나가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불러냈습니다.사람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낯선 골목길의 풍경에, 버스에서 스쳐 간 한 사람의 뒷모습에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나는 길 위에서 한 어르신을 만났고, 그분을 고향으로 보내드리며 20년 전 떠나신 아버지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배웠습니다.사람이 평생 찾아 헤매는 가장 먼 길은 어쩌면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버스를 몰고 길 위에 섭니다. 누군가의 목적지가 되어주고, 때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잠시 받아주는 사람으로.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길을 잃는 날이 온다면,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집 한 곳과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 한 명이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운행을 마칩니다.
박우석 기자 1965pp@naver.com






편집 : 2026.09.14 (월) 16: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