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이날 강연 주제는 ‘기억이 지워진 자리에 남는 것들’. 엄 작가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와 파킨슨병을 겪는 아버지와 함께한 8년의 시간을 ‘12개의 퀴즈’라는 형식으로 풀어내며,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엄 작가는 "퀴즈(Quiz)는 ‘너는 누구인가(Qui es)’라는 질문에서 비롯됐다”며 "인생의 퀴즈는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강연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알츠하이머 진단 이후에도 어머니는 유머와 긍정으로 일상을 살아냈다. 가족들에게 웃음을 건네며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힘을 보여줬고, 갈등 앞에서는 "신이 주신 퀴즈라고 생각하라”는 말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특히 딸이 소중한 기록이 담긴 노트를 잃어버리고 낙담했을 때 "잃어버렸기 때문에 상상력으로 복원하다가 소설가가 된 사람도 많다”는 말로 위로한 일화는 참석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어 "우리가 잃어버릴 수 있는 것 중 진짜 중요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는 ‘비움의 미학’을 일깨웠다.아버지의 이야기는 또 다른 울림을 전했다. "엄마를 돌보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나는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아내를 돌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관계 속에서 확장되는 ‘나’의 의미를 짚으며, 개인을 넘어 가족과 사회로 이어지는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게 했다.
엄 작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풀어냈다. 그는 "죽기 전에 기억할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르라면 사랑”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내가 기록하는 수많은 이야기의 중심에도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상 웹툰 ‘펀자이씨툰’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 역시 이 같은 진정성에 있다고 덧붙였다.강연 말미에서 그는 "가족과의 이별은 누구나 겪는 일이며, 삶과 죽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며 "담담하지만 단단하게 각자의 퀴즈를 풀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포럼은 단순한 강연을 넘어 삶의 태도와 관계, 사랑의 의미를 되짚는 시간으로 평가됐다. 참석자들은 강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며 여운을 나눴다.한편 엄유진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 킹스턴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인스타그램 ‘펀자이씨툰’을 통해 일상 속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등을 출간했다.동신대학교는 지역사회와 함께 미래에 대한 통찰과 행복한 삶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2023년부터 NEXT전남-나주상상포럼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27차례 강연을 통해 지역사회에 공감과 변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사진 - 동신대 조찬포럼 엄유진 작가
김도영 기자 jinee7198@naver.com






편집 : 2026.06.14 (일) 09:28


